오늘의 양식 2013년 12월 21일 묵상(요한계시록 1:12-16)
【오늘의 양식】
12월 21일(토)-『계1:12-16』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사도 요한은 나팔소리와 같은 큰 음성을 듣고 뒤로 돌이킬 때에 처음 본 것은 일곱 촛대입니다. 여기서 촛대는 성소에 있는 정금등대를 가리킵니다. 하나의 촛대에는 일곱 개의 등잔이 있습니다.(민8:2)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는 이러한 등대가 성소의 좌우로 열 개가 있었고 모두 70개의 등불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대하4:7) 오늘 말씀에서 ‘인자 같은 이’가 서 있는 촛대는 일곱이니, 등잔은 모두 49개입니다. 계1:20절에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는 초대교회부터 마지막 시대까지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유념해서 볼 것은 일곱 촛대에는 각각 일곱 등잔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촛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니, 각 교회 시대마다 진리와 생명의 빛을 전하는 택함 받은 교회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많은 교회가 있었지만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일곱 사자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주신 것처럼 각 교회시대마다 일곱 교회가 있어서 주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종교암흑기라고 하는 중세시대에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참된 교회가 있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세상이 극도로 타락하고 교회도 세속화되고 있지만 진리와 생명의 말씀만을 전하는 교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12 사도가 있는가 하면, 70명의 전도대도 있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받은 120명의 성도도 있고,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왜 나는 열두 사도로 택하지 않았습니까? 차별대우하는 것인가요? 이렇게 항변할 수 있겠지만,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갈1:15)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고 한 영혼을 택하십니까? 부모님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능력을 보실까요? 아니면 재능을 보고 택하실까요? 사실 재능을 보자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더 뛰어납니다. 헐리웃 배우 중에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직 나지 않은 사람도 어머니 복 중에서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을 보고, 즉 영혼의 성품을 보고 택하십니다. 영의 성품을 보면 그 사람을 압니다. 겸손한 영혼을 아시고 교만한 영혼을 아십니다. 그 영혼이 죽기까지 복종할 사람이 될지, 부인하고 떠날지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부름을 받았고,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택함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가운데 유다가 영적인 장자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가진 자를 부르시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절실히 깨닫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따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을 택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방법을 쫓는 교회가 아니라 핍박과 조롱을 받아도 오직 주님의 뜻을 전하고 진리의 말씀에 목숨을 거는 교회를 기뻐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많은 이단들처럼 자기들이 전하는 말씀이 진리고, 그곳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 마디로 미혹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이미 원수의 편에 서 있는 감히 교회라고 말할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중세시대 로마 카톨릭을 통해 핍박을 받은 교회와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로마 카톨릭이 6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고문과 사형을 집행하는 그림을 보면 치가 떨립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악할 수 있을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된 악행입니다. 힘이 있어 진리입니까? 세상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은 착각 중에 착각입니다. 우리 교회도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많습니다. 교회가 선교라는 명목으로 제국주의 식민지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오늘날도 교회가 무엇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나타냅니까? 저도 목사로써 교회를 섬기지만 부끄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심판은 세상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벧전4:17)
오늘날도 정말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교회가 있고 종들과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도 가끔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말씀을 듣는데, 어제는 양향복 목사님께서 광주 안디옥 교회에서 전하는 말씀을 들었는데, 목사님 아버님께서 60년 동안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을 연구하고, 이제 딸 목사님께서 마지막 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님이 60년, 이 분이 40년, 도합, 하나님께서 백년을 준비하셔서 세운 종이라고 어떤 분이 기도해주셨답니다. 아마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교회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깨어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스런 모습, 즉 부활의 주님으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비단 일곱 교회만 함께 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찬송과 기도가 드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형제자매님들이 섬기는 교회와 더불어 저희 교회에도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인자 같은 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 같지 않은 사람입니다.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영광스러웠기 때문에, 신적인 거룩함과 영광으로 충만했지만, 그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장차 영광을 얻으면 주와 같을 줄을 믿습니다. 주님의 영광과 감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크든 작든 영광이 있으니 감사한 일이요, 큰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그 날은 그 날이고,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133장 찬송을 좋아하는데, 어저께나 오늘이나 아무 때든지... 변함없으시고 영원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후렴구가 이렇습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 같은 주 예수를 찬양합시다. 세상 지나고 변할지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너무나 아름다운 가사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아무 자랑할 것 없어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온 세상에 충만하신 분이지만 특별히 교회와 함께 하시고 교회 가운데 다니십니다. 더욱 겸손함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충성된 일군으로 맡은 사명, 신실하게 잘 감당하면 주님의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상급, 면류관을 받는 그 날에 주님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도 그 날을 소망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일은 또 영광의 주일입니다. 가장 복된 날입니다. 세상과 벗하지 말고 주의 날을 주님께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