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1월 10일(금)-『계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1:15),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13:16) 왜 성경은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중요하게 여길까요? 그것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들이 있고 오히려 어떤 이는 눈을 감고 귀를 막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눈을 뜨고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복된지요! 보고 듣는 것으로 인해서 죄를 지을 수도 있는 반면 진리의 길을 발견하고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점점 거룩해져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는 것으로 더 믿음을 가질 수 있지만 가장 속기 쉬운 것도 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외모를 먼저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그의 겉모습과 출신배경을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보는 것에 푹 빠져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눈을 감기 전에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음란한 문화가 주택가를 점령한지는 오래됐고 인터넷을 통해서 가정까지 깊숙이 스며들었으며 이제는 손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사람들의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까지 삼킬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태입니다. 언젠가 원수 마귀가 사람들의 몸에 짐승의 표를 새길 때 사람들이 망설이거나 두려워하고 피해 다닐까요? 아닙니다. 줄을 서서 서로 먼저 맞겠다고 야단일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원수는 속으로 환호성을 치겠지요! 점점 뜨겁게 달궈지는 물통속의 개구리처럼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원수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온 세상이 원수의 외모에 속고 말에 속아서 원수가 주관하는 세상의 시민권을 자랑스럽게 받을 것입니다. 지금도 누구에게 미국의 시민권을 준다면 마다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 때는 원수 마귀를 그리스도로 섬기고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다. 가장 확실하게 유황 불 못에 들어가는 비결입니다. 믿는 자든 아직 믿지 않는 자든 정말 새겨들어야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유황 불 못에서 밤낮 쉼을 얻지 못합니다. 영원한 결박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나의 귀는 어떤 말에 익숙합니까? 육신의 쾌락과 세상의 성공과 축복, 형통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나의 관심거리입니까? 의와 거룩, 십자가의 길, 고난과 영광,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는 말씀을 믿고 내 영혼을 살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까? 우리 앞에는 생명과 사망, 화와 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복이 아닙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은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눈에 비치는 것으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 언제 끝이 납니까? 마지막 7년 대환난 가운데 한 때 두 때 반 때, 즉 후 3년 반이 지나는 동안에 성도의 권세는 완전히 깨어집니다.(단12:7) 원수 마귀는 자신의 나라에서 교회의 씨를 말립니다. 교회와 성도는 순교의 피를 흘립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땅에 의로운 피를 뿌립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의 끝이 옵니다. 교회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원수가 권세를 얻어서 모든 악을 행할 그 때가 마지막입니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잠시잠간의 자유가 마지막 때 있을 것이며, 온 세상이 밥 먹듯 악을 행할 것입니다. 이를 거부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전하는 교회는 핍박과 순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마음에 따라서 어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려워 할 것이며, 어떤 이는 그토록 사모하는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시니 기쁘게 영접할 것입니다. 나는 어디에 서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가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참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은 교회의 양육자요, 인도자요, 보호자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양육의 책임을 가진 어머니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교회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성령은 세상의 영이 아닙니다. 그 이름처럼 거룩하신 영입니다.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몸에 좋은 음식을 공급해주는 것처럼 성령께서도 의롭고 거룩한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교회를 양육하십니다. 독이든 풀을 먹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를 미혹하는 말씀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영혼들을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이 그 하나요, 그릇된 교리를 통해서 진리를 떠나 거짓된 영을 따르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 의롭고 거룩해지기 원하고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아들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거룩하신 영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나의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는 자가 되면 안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 분별하고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세상의 영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들을 분별해야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무력화시키는 말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의 축복이 아니라 육신의 축복을 쫒게 만듭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모든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으로 간절히 받아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을 받기 원합니다.
에베소교회의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생명나무의 길은 막혀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양식, 특히 성찬을 통해 주시는 떡과 포도주, 즉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와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살과 피는 더욱 거룩의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든 영의 양식이든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고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양식입니다. 일용할 양식입니다. 가나안 땅의 풍성한 축복은 천국에서 누리는 복입니다. 그런데 아직 교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낙원과 이 땅에 임하는 천년왕국도 호흡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아직’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약속 아닙니까? 즉 이기는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한번 두 번으로 끝나는 승리가 아니라 계속적인 승리, 마지막까지 이기는 자로 살 때 주어지는 상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전심전력해야 들어갈 수 있는 험난한 길,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마음으로 결단하고 죽기 살기로 가야할 길입니다. 죽어서라도 가야할 길이 천국길이요, 영생의 길입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좌우를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저도 사실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너무나 부족함을 느낍니다. 마라톤 선수가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달립니까? 사람들의 이 소리 저 소리 들으면서 간다면 어느 세월에? 그러므로 그는 오직 결승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가 이와 같습니다. 나 자신과 싸움이며, 뒤에서 들리는 수많은 유혹하는 소리와의 싸움이며, 좌우에 펼쳐진 세상의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달려야하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이기는 것은 쉽지 않고 상 받는 자도 적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길입니다. 늦어도 반드시 끝까지 달려야할 경주입니다. 생명나무는 생명을 주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이 영원토록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생명나무가 없습니다. 오히려 선악과로 가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이 되시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기 원합니다. 지극히 단순한 진리지만 그 결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신앙의 승리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오늘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13일 묵상(요한계시록 2:8-11) (0) | 2014.01.13 |
---|---|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11일 묵상(요한계시록 2:8-11) (0) | 2014.01.11 |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9일 묵상(요한계시록 2:1-7) (0) | 2014.01.09 |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8일 묵상(요한계시록 2:1-7) (0) | 2014.01.08 |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7일 묵상(요한계시록 2:1-7) (0) | 2014.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