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13일 묵상(요한계시록 2:8-11)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1. 13.


 【오늘의 양식】

1월 13일(월)-『계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종교는 없다. 특히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가 아니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이 있다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에큐메니칼, 즉 종교연합이나 통합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단어가 없습니다.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종교도 더는 자기 절대성, 혹은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배척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와 대화하고 연합운동을 펼치는 WCC와 같은 단체들은 세상에서 환영을 받습니다. 이들은 강단을 서로 교환하기도 하는데, 신부님이 절에 가서 강론을 하거나 스님이 성당에 가서 설법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오래 전 조용기 목사님께서 동국대학교에 초청을 받고 가서 말씀을 전하다가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혼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신 조엘 오스틴도 방송에 나와서는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직 예수를 말하고 오직 십자가를 말하고 천국과 지옥을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은 싫어합니다. 교회도 세상의 발맞추어서 시대에 맞는 좋은 말들을 해주기 원합니다.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주장에서 벗어나 타협도 하고 교류도 갖기 원합니다. 평화방송에 캡쳐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어떤 신부님이 나와서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보내실 리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럼 지옥을 원수 마귀가 만들어서 자기가 그곳에 갇혀 있습니까? 범죄자들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까? 세상에 여전히 선과 악이 존재하고 범죄자들로 인해 감옥이 넘쳐나는데, 세상보다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심판하고 계신데, 어찌 악인이 들어가는 지옥이 없겠으며, 의인이 들어가는 천국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거나 지옥이 없다는 이야기는 성경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듣기 좋은 말이라고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심판이나 지옥이 없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그래서 죄사함이 필요하고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심판이 없고 지옥도 없고 천국의 상급도 없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큰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당했겠습니까? 서머나교회 시대의 수많은 성도들이 카타콤에서 일생을 마치고 콜로세움에서 사자 밥이 되거나 화형당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죽어갔을까요? 부활이 없고 천국이 없으면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예수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을 마다하고 오늘 말씀처럼 환난과 궁핍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하고 확신있게 진리를 전하십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주리라!” “자기 목숨을 얻고자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약속할 수 없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고 영원토록 살아계신 주님께서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서머나교회시대의 성도들은 유일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환난을 견디고 궁핍도 감사했습니다.

 

세상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요? 많은 이들이 이원론을 싫어하지만, 빛과 어둠, 생명과 사망, 심판과 구원, 영생과 영벌.......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서머나교회는 부요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부요하다고 스스로 자랑하지만 실상 가난하다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손에 쥔 것 없이 가난한 교회였지만 영적으로 부요하고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천국의 소망이 마음 가득히 차 있어서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지하묘지교회였지만 세상에 거룩한 빛으로 비추는 교회, 세상이 썩지 않도록 보존하는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깊은 지하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찬송이 있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믿음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서머나교회시대 동안 열 번의 큰 핍박이 있었다고 하며,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하면서 그리스도 교회에게 자유를 주기 전까지인 A.D. 303~313년 사이의 디오클레시안 황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10년간의 핍박이 가장 극심하였던 사실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도 311년 사망하기 직전에는 기독교인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칙령을 발표하고 순교자들을 모라교외에 있는 지하 카타콤에 장사지내주기도 했으며, 마지막엔 오히려 자기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답니다. 십여 차례의 박해 중 배교자들도 많이 나타났으나 수십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순교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십여 차례에 거친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죽지 않았고 기독교는 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순수하게 되었고 왕성하게 성장했고 기독교는 제국 위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본래부터 박해를 당하는 종교이고 순교를 당하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사가들은 이 천년 역사 중에서 교회가 가장 교회답고 기독교가 가장 기독교다웠던 때는 처음 300여 년이었다고 입을 모아서 말을 합니다.

 

갑바도기아에서 발견된 카타콤은 2천 명 정도가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로마 근처에는 60여 개의 카타콤이 있으며, 그 안에는 960km의 통로가 발견되었습니다. 로마 근교에 있는 카타콤은 지하 통로의 길이가 500km 이상 됩니다. 로마의 카타콤 중 칼리스토 카타콤은 묘역만도 4만 5천평에 달하며 그물처럼 얽혀져 있는 통로들은 여러 층으로 파여 있으며 깊이 들어간 곳은 지하 20m가 넘을 정도입니다. 그곳에 묻힌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대략 10만여 명이나 된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카타콤을 찾는데, 안내자 없이는 카타콤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5층쯤의 깊이로 파 들어간 데에다 거미줄처럼 미로가 엃히고 설켜 쉽게 길을 잃기 때문입니다. 카타콤은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터널형 통로를 사방으로 뚫었고 계단을 만들어 2~5층 정도의 여러 층으로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벽에는 모두 약 600만 명에 이르는 성도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 시기는 로마의 역사가들이 ‘피의 시대’라고 주를 정도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속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 질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손가락으로 벽을 긁어 보면 쉽게 파인다고 합니다. 토양이 석회질이기 때문인데, 또한 이 석회질은 공기와 만나면 딱딱하게 굳어버려 천연적으로 고층의 구조물을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합니다.

 

원수 마귀는 세상의 강력한 권력으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의 큰 박해가 있었지만 교회는 지하묘지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또한 죽도록 충성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한 순교자들은 약속의 말씀대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수많은 교회와 성도가 있는 오늘날보다 더 많은 성도들이 영광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면류관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목숨과 바꾸는 것이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잠시잠간 가지고 누리는 육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생하는 몸을 상급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상급은 거룩한 육체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몸을 드리되 죽기까지 충성한 자들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영광의 기회가 올까요? 또 어떤 사람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지 야고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평안의 때 즉, 모든 것이 풍성하고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 물질의 유혹과 시험을 이긴 자에게 동일한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대와 우리의 형편과 상관없이 항상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순종에 따라서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좁은 문, 생명의 길을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