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12월 3일(화)-『요20:19-20』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사람은 단단한 벽을 뚫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술사들은 사라지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트릭입니다. 한 마디로 속임수입니다. 사람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해서는 도구룰 사용해야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보단 본다렌코(24)가 제14회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 16일) 남자 높이뛰기 종목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습니다. 높이가 얼마나 될까요? 2m 41cm입니다. 그것도 20년 만의 신기록이라고 합니다. 장대높이뛰기는 얼마나 될까요? 6m 14cm입니다. 도구를 사용하니까 3배 정도 더 뛸 수 있습니다. 여자는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세운 5m 6cm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합니다. 사람들은 과학발전을 통해서 우주개발의 꿈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도 며칠 전에 달 탐사선을 발사했습니다. 사람들은 쉼 없이 하늘을 향해 도전합니다. 도시마다 빼곡하게 채워지고 있는 고층빌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닿기까지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 땅속이나 바다에 터널을 놓지만 앞으로 우주를 향한 터널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의 몸은 제한이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날지도 못하고 물속에 들어가서 오래있지도 못합니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쉬지도 못합니다. 몸이 좋긴 좋은데,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혹시라도 병이라도 들면, 몸이 도리어 짐이 됩니다. 육신도 건강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마음껏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여행도 할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육신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늙고 쇠약해지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건강한 청년의 몸의 수천수만 배나 더 좋은 몸을 가졌다면, 그 생명의 능력이 얼마나 크겠습니다. 부활의 몸은 사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부활의 몸은 더 이상 늙거나 죽는 것도 없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성경은 이를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고 표현합니다(벧후1:4). 부활하신 예수님은 기이한 분(기묘자)입니다. 한 마디로, “원더풀(Wonderful)"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입니다. 몸이 안 따라주고 사람도 안 도와주고 환경도 뜻대로 안 열립니다. 내가 눈을 내리고 싶다고 내릴 수 있습니까? 비를 내리고 싶다고 내릴 수 있습니까? 억지로 약품을 뿌리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먹은 대로 되는 세상입니다. 자기 집에 들어갈 때도 예수님처럼 벽을 통과해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겠지요! 거리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먼 곳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가 급합니까? 좋은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기면서 가야 즐거운 여행이지요^^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면서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들어오셨습니까?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꼭 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줄 태세였기때문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은 벽을 통과해서 들어오셨습니다. 무엇의 차이입니까? 몸입니다. 우리는 지금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지만 예수님은 더 높은 차원의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경은 사람의 몸, 육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고전15:39)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생기(영)를 주시기 전에 무엇을 먼저 만드셨습니까? 흙으로 육체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몸을 보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짐승의 몸에 하나님의 생기를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을 보니 누구를 닮았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그 속에 생기를 불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얻게 될 육체는 어떨까요? 자!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심겨져 죽는 것처럼 십자가의 죽음으로 육신의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이 말은 영혼이 몸을 잃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몸이 주체가 아니라 영혼이 주체입니다. 육체는 옷이나 집과 같습니다. 죽음이란 몸에서 영혼이 떠나는 것이지만 영혼이 몸을 잃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받고 몸을 잃었습니다. 영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시 자신의 몸에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들어간다 하여도 그 몸은 언젠가는 늙고 죽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의 몸은 영원한 장막이 못 됩니다. 비유하자만 접었다 폈다 하는 텐트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몸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영혼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몸을 주십니다.(고후5:1) 그래서 영혼은 영원한 처소인 몸에서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몸을 가지고 우리가 한 평생 사는데, 자기 몸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제사로 드릴 수 있고 몸을 서로 욕되게 하거나 음행하고 세상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썩어지지 않는 것을 거두기 위해서는 썩어질 것을 심어야합니다.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기위해서는 욕된 것으로 심어야하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약한 것을 심어야합니다.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기 위해서는 육의 몸으로 심어야합니다.(고전15장42-44) 심지 않으면 얻는 게 없습니다. 또 반대로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고 더러운 육체를 얻게 됩니다. 언제입니까? 마지막 백보좌 심판을 받을 때입니다. 지금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에서 영혼의 상태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들어가는 영원한 감옥인 유황 불 못은 현재 지옥과는 비교할 수 없이 뜨겁고 뜨거운 곳입니다.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갑니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합니다.(계14장11) 유황 불 못에서 몸으로 받는 고통은 지옥에서 영혼이 받는 고통과 비교가 안 됩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마10:39)
예수께서는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평강을 전하셨습니다. 두려움 중에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죽음만큼 큰 두려움은 세상에 없습니다. 제자들도 그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베드로도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왜 굳이 상처를 보여주셨을까요? 제자들도 지금 찾아오신 분이 정말 예수님인가 의심할 정도로 예수님의 모습은 찢기고 상하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과 전혀 달랐습니다. 정말로 거룩하고 영광스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고난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얼굴이나 온 몸에도 상처투성이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수임을 증거하고 믿음을 갖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비로소 제자들도 믿고 기뻐하였습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상급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은 영혼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의의 면류관이요! 썩지 않는 면류관이요! 생명의 면류관이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면류관을 받는 모든 자녀들은 왕이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며,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을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는 큰 은혜를 입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보고 만난 제자들을 보십시오!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결 같이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살과 피를 아버지께 산제사로 드렸습니다. 오히려 더 큰 영광을 얻고자 더 큰 고난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오늘도 부활의 주님은 평강으로 나를 찾아오십니다. 어떤 환경도 주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내쫓고 담대함을 주십니다.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따를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자신이 변치 않는 진리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증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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