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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30일-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요한계시록 3:1-6)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2. 2.

【오늘의 양식】

2월 2일(주일)-『계3:1-6』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사데교회시대의 많은 성도들이 깨어있지 못함으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는 몇 사람은 주님께 합당한 자로 인정을 받고 장차 흰 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지 몇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적은 수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사데교회시대 가운데 구원받는 자가 적다는 것이며, 오늘날 사데교회의 모습을 가진 교회 또한 구원받는 자가 적게 될 것입니다. 깨어있지 않는 교회, 즉 영적으로 잠자는 교회는 자기 영혼을 지키지 못합니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 어느 누구도 나의 구원을 취소하지 못한다. 나는 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오직 믿음을 외치고 구원을 위해 내가 할 일은 전혀 없다고 자신하면서 의롭고 거룩한 행위가 없다면 주님이 보실 때는 외식하는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구원은 결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한 20세 이상 남자 60만 가운데는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수에 들지 않았던 여자들은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합당한 자가 들어갑니다.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온전한 사람입니다. 옷은 자신의 행실을 가리킵니다. 흰 옷, 즉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은 힘이나 지식이나 권세 있는 자가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거룩한 자가 얻고 그 영광을 누립니다.

 

예수께서 거룩한 산에 올라갔을 때 변화된 모습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주님의 옷이 빨래하는 자가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광채가 나고 심히 희어졌습니다. 우리는 옷만 주목해서는 안 됩니다. 희고 빛나는 옷은 주님의 영광스러움과 거룩함을 그대로 나타내줍니다. 제자들은 아직 십자가에 죽기 전이었지만 이미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데교회의 이기는 자도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게 됩니다.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고 그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절대 흐리지 않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약속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이며, 큰 축복입니까?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엎드려질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만큼은 반드시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볼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과 같습니다. 일곱 교회의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오직 구원입니다. 이 땅에 임하는 천국의 복, 즉 천년왕국의 복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복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세상의 경주와 다릅니다. 내 안에서 주의 뜻을 거스리는 육신의 생각과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정욕과 욕심을 내려놓는 싸움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잃을 수 있는지의 싸움입니다. 하늘의 축복과 땅의 축복을 동시에 얻고자하는 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에 들어갑니다. 즉,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인이 마지막에 심판을 받아 들어가는 어두운 곳입니다. 한 마디로 예복을 입지 않고 천국잔치에 들어가려는 사람입니다.(마22:13) 교인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행실은 꽝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았습니다. 새 사람이 아니라 옛 사람 그대로 살았습니다. 라오디게아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유황 불 못이나 천국문 밖 어두운 곳에 들어가 자신이 품은 마음과 영혼의 더러움을 따라 영원한 죄 값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어두운 곳은 뜨거운 유황 불 못과 달리 매우 추운 곳입니다. 그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예수님을 알지만 끝까지 세상을 버리지 못한 영혼들이 고통당하는 영원한 심판의 처소입니다. 생각하건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들어갈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원수 마귀로부터도 버림받은 영혼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지만 그 기회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영혼들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모든 영혼들은 마지막 심판을 받고 세 군데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단순히 천국과 지옥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의 처소는 유황 불 못이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천국백성들이 들어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빛이 없는 바깥 어두운 곳,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마22:13)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고 숨겨두었던 종도 그곳으로 쫓겨납니다.(마25:30) 이와 같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길에 원수의 시험도 있고 하나님의 테스트도 있습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 하지만 천년이 차고 원수 마귀가 무저갱에서 다시 올라 와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포위하고 싸움을 붙일 때에 수많은 백성들이 원수 마귀의 편에 서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아 소멸됩니다.(계20:8,9)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축복을 앞두고 무슨 짓입니까?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합니까? 지금 우리의 마음을 따라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주님께서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말씀하십니다. 저 또한 그러한 자리에 설까 두렵습니다.

 

사데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종교개혁시대에 오직 말씀, 오직 믿음을 외쳤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많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 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고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누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시데교회시대에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적은 수가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믿음과 행함을 함께 가지고 있었던 성도들입니다. 옷은 몸의 수치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가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노출이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사람들이 수치심조차도 갖고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포털사이트에 자주 어떤 여자 연예인이 입은 옷의 노출정도를 기사와 사진으로 뜰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동성애도 예능프로그램의 토크쇼에 어렵잖게 오르내리고, 드라마는 동성애를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합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웃고 즐깁니다. 벌거벗김을 당하는 것은 매우 큰 수치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마지막에 입을 옷이 없다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옷은 부끄러움을 감추는 옷이 아닙니다. 자신의 영광을 빛으로 나타내는 옷입니다. 희고 빛나는 세마포는 영혼의 거룩함과 영광을 드러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친히 입혀주시는 옷은 이 세상의 옷은 비교할 수 없는 깨끗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도 적고 더욱 면류관을 얻고 영광의 옷을 입는 자는 더욱 적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교회에 속하든지 이기는 자가 받습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이기는 교회가 되고 또한 이기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의는 내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요, 주님께서 인정하는 의가 되어야합니다. 바울 사도가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처럼 나 자신이 정말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보시고 의와 거룩의 십자가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의 날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신다 하셨으니 꼭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거룩하고 복된 주일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