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2월 3일(월)-『계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40km 떨어져 있으며, 자주 지진이 일어나는 카타케카우메네 대평원의 가장자리에 위치합니다. 포도 생산지로 유명한 고원도시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의 유래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당시 버가모 왕국의 유메네스 왕이 도시를 건립하고 자기의 대를 이을 동생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동생의 이름인 ‘빌라델푸스 아타루스’에서 따와서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그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동생이 도시를 건립하고 형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형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의 빌라델비아로 명명했다는 설입니다. 빌라델비아는 교통의 요지로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였지만 20년 주기로 돌아오는 잦은 지진으로 크게 번성하지는 못했습니다. AD 17년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후 티베리우스 황제가 이곳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가짐으로 인해 복구 되었습니다.
‘작은 아테네’로 불릴 만큼 우상이 범람했고 로마 황제숭배가 극심하여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했습니다. 유대인들마저도 회당을 중심으로 기독교인을 박해하여 이중고를 격은 기독교인들 중에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계시록에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런 모든 환란을 잘 이겨낸 충성된 자(계 3:7-13)들이라고 아시아의 7교회 중 서머나교회와 칭찬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훗날 오스만 터키의 집요한 공략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제국의 최후 보루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지킨 것으로 기독교 역사에서도 유명합니다. 지금은 6세기경에 세워진 사도 요한 기념교회의 유적만이 주거지역 한 가운데 덩그렇게 남아있습니다. 기둥이 유난히도 큰데 지진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입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칭하면서 배척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손에 붙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때에 땅에서 올라오는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그 권세와 힘을 의지하여 성전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은 헛된 꿈에 젖어 참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완악함으로 복음이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전파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한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진실로 진실로”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 분의 말씀에는 거짓이 전혀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던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해와 실수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고 기다렸으나 아직 오시지 않았다 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자체가 거짓은 아닙니다. 원수 마귀는 이러한 사람의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불신과 무감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말씀하신 징조가 보이긴 하지만 오늘 내일 당장 그리스도께서 오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안심 할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그 때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열쇠를 가진 자는 언제든지 열고 닫을 수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욱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십니다.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실 주님으로 이 땅 가운데 내려오실 것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께서 열 때가 있습니다. 또한 닫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빌라델비아교회 시대는 주님께서 세계선교의 문을 여신 때입니다. 그래서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신 문을 아무도 닫지 못합니다. 사실 문을 열기가 힘들지 열린 문을 나가고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열리지도 않는 문을 붙잡고 힘쓰고 애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과 상관없는 문, 세상의 축복과 형통의 문을 열어 재낀 역사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시는 분은 복음전파의 문, 선교의 문, 구원의 문입니다. 저희 교단의 원로 중의 원로 되시는 목사님께서 교회에 150억의 재산 피해를 준 혐의에 대하여 검찰이 징역 5년에 벌금 72억을 구형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교회내의 문제로 세상법정에 서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순절교단이 성령운동의 불길을 일으킨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세상의 성공과 축복, 그리고 형통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복음의 순수함을 잃게 만든 것도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세상의 축복을 가지고 오는 순간 교회는 거룩한 영적 힘을 상실하고 맙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열린 문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들고 나갔습니다.
빌라델비아”라는 이름은 헬라어 “필로”와 “아델포스”. 두 낱말의 합성어입니다. “필로”는 사랑이고 “아델포스”는 형제입니다. 따라서 빌라델비아는 형제의 사랑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시대는 1750-1905까지의 150년간을 가리킵니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가 1793년에 인도에 갔습니다. 로버트 모리슨이 1807년에 중국에 갔고, 리빙스턴을 이어서 로버트 모펫은 1817년에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로버트 모리슨이 1807년에 중국에 갔으며, 중국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가 1854년 중국에 파송되었습니다. 성서 공회가 조직되기 시작했고, 주일 학교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됐습니다.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한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이 운동이 영국, 미국 등 구라파를 뒤흔들어 선교사를, 복음을 열심히 전파하고 파송 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요한 웨슬레, 조나단 에드워드, 찰스 피니, 스펄젼, 무디 등 수 많은 부흥사들이 미국과 구라파에 뜨거운 복음의 불길을 일으켰습니다. 수많은 선교사가 인도, 아프리카, 중국,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나가서 순교의 피를 흘리며 순교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이 운동이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이 1905년까지 활발하게 일어나 교회사를 장식하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허드슨 테일러와 윌리엄 캐리의 전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유명한 말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시오.”, “내가 죽으면 캐리박사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캐리박사의 구세주에 대하여 말하시오.”
캠브리지 대학생들이 선교에 헌신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캠브리지 7인은 중국 복음을 위하여 허드스 테일러의 중국내지선교회에 선교사로 지원함으로써 청춘을 하나님에게 온전하게 드린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대학생 혹은 동문인 7인을 말합니다. 보샴, 카슬, 호스트, 아더 터너, 세실 터너, 스미스, 스터드는 캠브리지 대학재학 중 무디의 설교를 듣고 영적으로 각성된 상태에서 1883년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의 영적 필요와 요구>라는 소책자를 읽고 중국 선교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885년 캠브리지 대학의 길드홀에서 스탠리 스미스는 다름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 우리를 땅 끝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이 빛을 온 세상에 전파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참 빛도 빼앗겨 버릴 것입니다.”1885년 2월 캠브리지 7인은 런던을 출발하여 3월 18일 중국 상해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허드슨 테일러와 동역하면서 중국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미국의 학생자원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제 마음에 다시금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살고, 환경과 능력을 탓할 것이 아니라 부르심의 사명 위에 오직 복음을 들고 나가야하는데...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고, 주님께서 문을 여시면 언제라도 복음을 들고 세계 열방가운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칭찬을 우리 모두가 듣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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