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2월 4일(화)-『계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데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둘 다 행위를 알고 계시지만, 그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사데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요, 온전한 행위를 드리지 못했다고 책망하시는 반면,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고 칭찬합니다. 사데교회가 교리에 스스로 묶여 거룩한 행위를 드리지 못했다면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살아있는 복음,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드리고 온 열방 가운데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정치와 결탁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자신을 주님께 드린 한 사람의 헌신이 한 나라를 변화시키기고 대륙을 뒤흔들었습니다. 아주 작은 불꽃이 큰 산을 태우듯이 미약한 한 영혼이 주님의 손에 붙들렸을 때 크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유명대학의 수재도 있었고 평신도로써 구두수선공이었지만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한 무디와 같은 복음전도자도 있었습니다.
감동적인 선교사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또한 오늘 그 내용을 읽으면서 저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립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봅니다. 조셉 헨리 데이비스는 호주출신으로 조선에 제일 먼저 왔던 선교사입니다. 데이비스는 호주 멜버른 출신인데, 원래는 인도로 가기를 원했으나 데이비스 자신은 인도로 가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생각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 중국 푸쵸에서 선교하던 CMS 소속 선교사였던 울프가 한국의 부산을 방문한 이후 한국 선교의 필요성과 긴박성을 호소했는데 그의 편지가 성메리교회의 메카트니목사가 편집, 발행하는 「국내, 국외 선교」(The Missionary at Home and Abroad)에 발표되었고 이 호소는 데이비스로 하여금 한국으로 향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1888년 8월 21일 데이비스는 누나 메리 데이비스(1853-1941)와 함께 멜버른을 떠났습니다. 한국으로 향한 첫 여행이자 그의 생애에서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40일간 항해를 끝내고, 1889년 10월 2일 일본을 거쳐 부산으로 입국했습니다. 당시 33세였습니다. 당시 모든 선교사가 처음 도착하는 곳이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을 둘러본 후 다시 출항하여 10월 4일 오전 11시에 제물포(인천)에 도착하고 서울에서 5개월 동안 우리말을 배웁니다. 2월 26일자로 쓴 그의 편지를 보면 “조선말(Chosen Mal) 공부에 바빠 심지어는 가족들에게 편지 쓸 시간조차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5개월 후에, 그는 우리말로 더듬거리며 설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 지역을 결정하기 전에 답사여행을 하기로 하고 일단 부산으로 가기로 작정합니다. 그것은 부산이 한국의 관문일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이며 일본과 인접해 있어 보다 더 효과적인 선교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도착한 그 다음해인 1890년 3월 14일, 누나 메리를 서울에 남겨둔 채 어학 선생과 하인, 그리고 매서할 문서와 약간의 약품 등을 준비하여 서울을 떠났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전도하며 내려오는데, 20일을 걸어서, 4월4일에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무리한 도보 여행으로 인해 천연두에 감염되었고 곧 폐렴이 겹쳐 마지막 5일 간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데이비스가 부산에 도착한 날은 4월 4일 금요일이었다. 이날도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습니다. 당시 부산에 있던 유일한 서구인이었던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게일(J. S. Gale)은 데이비스가 위급하다는 짐꾼의 전갈을 받고, 그가 투숙한 여관으로 급히 달려가 그를 자기 집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거류지에 살던 일본인 의사 기타무라(北村)에게 치료를 부탁했습니다. 의사는 그가 천연두에 감염되었고, 폐렴까지 겹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데이비스는 곧 회복될 것이라고 도리어 게일을 위로하였으나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게일과 데이비스 이 두 사람은 함께 기도했습니다.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살든지 죽든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라고.......
일본인 의사가 급히 병원으로 옮겼고, 게일과 그의 어학선생 이창직이 그를 간호했으나 불안한 하루를 지내고 다음날, 부활절을 하루 앞둔 4월 5일 토요일 오후 1시경 데이비스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때가 그가 한국에 온 지 6개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한국 땅을 밟은 지 꼭 183일째였습니다. 우리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너무도 짧은 생애였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에 뿌려진 첫 번째 한 알의 밀알이라면,‘데이비스 선교사’는, 조선에 뿌려진 두 번째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데이비스의 죽음과 함께 그 누나 메리도 폐렴으로 얼마간 고생했으나 헤론 의사의 치료로 회복한 다음 한국을 떠났고, 그해 7월 18일 멜버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로서 빅토리아주 장로교회의 한국 선교는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유능했던 청년 선교사의 갑작스런 죽음은 호주교회로 하여금 한국선교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6개월 만에 순교한 데이비스 선교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호주에서 ‘데이비스 선교사를 뒤따르는 후배 선교사’들이 줄을 이어 자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해방 전까지 78명, 해방 후까지 약 120명의 호주 선교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큰 열매를 낳았던 것입니다. 특히 호주 선교사들은, 그 후에도 부산 경남 지역에서만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산에 오자마자 하루 만에 돌아가신 데이비스 선교사를 추모하며, 데이비스 선교사가 죽은 부산에서 사역하자’는 어떤 정신적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자기 혼자서는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을 수십 배로, 그의 후배 선교사들이 해내는 놀라운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것입니다. 1891년부터, 부산 경남은, 호주 선교사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호주선교활동의 큰 부흥을 이루게 됩니다. 이때 맥카이 선교사도 들어오는데, 맥케이 선교사의 부인이, 부산에 오자마자 3개월 만에 또 소천하셨습니다. 이 분도, 데이비스 선교사와 함께, 부산에 묻히셨습니다.
『창끝』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1950년대 에콰도르의 아마존 정글에서 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폭력적인 한 원주민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다섯 명의 선교사이야기도 아실 것입니다. 5명의 안타가운 죽음으로 막을 내릴 것 같았던 이야기는 죽은 선교사들의 가족이 그 부족을 다시 찾아가면서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구원의 역사와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죽음과 희생으로 맺는 새로운 생명의 열매입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교회의 형제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13:4)
창끝 영화입니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데이터가 많이 나오므로 꼭 와이파이 상태에서 보세요^^
창끝-1:http://blog.daum.net/jesus_blessed_church/4722
창끝-2:http://blog.daum.net/jesus_blessed_church/4721
창끝-3:http://blog.daum.net/jesus_blessed_church/4720
창끝-4:http://blog.daum.net/jesus_blessed_church/4719
창끝-5:http://blog.daum.net/jesus_blessed_church/4718
창끝-6:http://blog.daum.net/jesus_blessed_church/4717
'오늘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양식 2014년 2월 6일-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요한계시록 3:7-13) (0) | 2014.02.06 |
---|---|
오늘의 양식 2014년 2월 5일-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3:7-13) (0) | 2014.02.05 |
오늘의 양식 2014년 2월 3일-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요한계시록 3:7-13) (1) | 2014.02.03 |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30일-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요한계시록 3:1-6) (0) | 2014.02.02 |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30일-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요한계시록 3:1-6) (0) | 2014.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