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2월 11일(화)-『계3:14-22』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묵상하고, 특히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통해 은혜를 함께 나누면서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가 ‘행위를 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고 칭찬하는 동시에 처음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신 후, 회개하고 처음행위를 가지라고 권면하십니다.(계2:2,5) 서머나교회와 버가모교회에는 행위란 말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죽도록 충성하고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죽임을 당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는데, 따로 행위를 언급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두아디라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칭찬하시면서, 여자 이세벨과 간음한 자들을 향해서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에 던진다고 말씀하시고 또한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데교회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사데교회를 보실 때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행위를 보면 죽은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합당한 자들이 있고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다닐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배반하지 않은 온전한 행위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열린 문을 허락하시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제 마지막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마지막시대교회도 주님께서 그 행위를 아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시는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않다고, 그 행위를 책망하십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양단간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의 북쪽 10km, 해발 333m에 위치한 히에라볼리는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온천 지대입니다. 히에라볼리는 ‘거룩한 성읍’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곳 온천수에는 많은 양의 석회질이 오랜 시간 물속에 침전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비경을 이루고 있는데, 산비탈을 온통 순백의 바위가 뒤덮고 있으며 층층이 테라스 모양의 천연 욕조를 만들어 놓아 대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높이가 100m에 이르는 백색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이 자연의 장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만발한 목화송이로 뒤덮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화성(Cotton Castle)이라는 뜻인 파묵갈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16절의 ‘더웁다’에 사용된 단어,‘제스토스’는 물이 끓는 정도의 뜨거움을 의미하면서 히에라볼리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온천수를 가리킵니다. ‘차다’의 ‘프수크로스’는 얼음이 얼 정도의 냉기를 가리킵니다. 라오디게아는 물 사정이 좋지 않아서 히에라볼리에서 솟아나는 온천수와 바바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에베소의 차가운 물을 수로를 통해서 끌어다 사용했는데, 뜨거운 온천수나 에베소의 생수가 라오디게아에서 만나게 되지만 10여 킬로를 흘려오면서 온천수는 식어지고 생수는 따뜻하게 되어서 둘 다 미지근한 상태가 되고 맙니다. 철분과 석회질이 섞인 미지근한 물은 목이 마른 사람이 마셔도 구역질이 나고 토하여 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말씀하시고, 오늘날 마지막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토하여 내쳐버리겠다!” 무서운 심판의 말씀입니다. 세상은 좋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갈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앙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한 발은 교회 안에, 또 다른 발은 세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 다를 취하지도 못하고 둘 다를 버리지도 못합니다. 부요한 라오디게아처럼 차가운 물도 끌어올 수도 있고 뜨거운 온천수도 끌어올 수 있는 부요함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도 포기 못하고 세상의 영광도 버리지 못합니다. 세상의 축복도 받고 하늘의 신령한 복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누가 나의 구원을 막으랴! 누가 나의 형통을 빼앗을 수 있는가? 나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모두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절세미인의 아내, 성공한 남편, 사업의 축복, 출세가도를 달리는 자녀들의 성공....... 거침이 없습니다. 10km 아니라 100km가 떨어져 있어도 끌어올 심산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토하여 내 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마음도 행위도 아버지의 뜻이나 주님의 말씀에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이 시대의 수많은 영혼들이 새 하늘과 새 땅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유황 불 못의 뜨거운 곳도 아닌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중간지대로 들어갑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는 자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10년, 20년, 수십 년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도가 터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몰라도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주님 말씀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십자가만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돌지 않았습니까? 회개하라는 주의 종의 외침에 무릎 꿇고 통곡하고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눈에 보이는 더 큰 역사, 더 많은 은사가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결단을 못합니다. 세상을 포기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일류대학을 가서 내 꿈을 한 번 이루어볼까? 대학생들은 남들이 말하는 신의 직장에 들어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인생을 즐기려고 합니다. 땅에 마음을 두고 땅을 바라보고 살다보면 하늘의 소망은 지하 한 쪽 구석 궤짝 안에 처박아 놓은 지 오래고 말씀도 기도도 녹을 슬어서 모양과 형식만 남습니다. 구원이나 영적인 것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지옥 갈 때 가더라도 육신의 복을 마음껏 누립니다. 그런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세상 속에서 깊이 못 들어가고 주님의 은혜의 문 앞에서도 머뭇거립니다. 그냥 세상과 천국의 갈림길에서 주저 앉아있습니다. 지옥 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나를 희생하는 좁은 길을 가기에는 고난스럽고... 평생을 그렇게 삽니다. 주님께서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원수 마귀도 거들떠보지 않는 인생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주님의 앞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차가운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뜨거운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물은 차가와지 않을까? 차가운 쪽을 택해야지.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신앙은 뜨거워야합니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사모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차갑거나 식어져서는 안 됩니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온 몸과 영혼에 충만해야합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처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있으면 안 됩니다. 일어서야합니다. 히에라볼리, 거룩한 성이라는 의미처럼 저 천성을 향해 나아가야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하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를 모른다 하면 끝장입니다. 요즘 막장 드라마가 인기인데, 세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거짓이 진리의 옷을 입고 나타나고 하늘을 보지 못할 만큼 세상의 유혹은 더욱 강하게 믿는 자들을 유혹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살 길을 우리에게 말씀으로 열어주고 계십니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님의 책망을 우리는 아멘으로 받습니다. 왜 주님께서 자신을 아멘이라고 소개하셨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우리가 아멘하면 사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 앞에 아멘하기가 머뭇거려집니까? 내 마음이 미지근하고 나의 영적 상태가 미지근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킵시다! 우리 안에 거룩한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도 토해버립니다. 천국 문이 닫히면 지옥의 문이 열립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하늘양식으로 먹이셨습니다.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산해진미나 술 취하게 하는 물이 아니라 깨끗한 양식과 물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씀을 듣되 영혼을 살리는 말씀과 영혼에 생명을 주는 생수와 같은 말씀을 먹고 마시기 원합니다. 원수가 주는 사망의 물과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썩은 물이 아니라 진리와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내 영혼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모든 영혼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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