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6월 5일-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계16:3-7)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6. 5.

【오늘의 양식】

6월 5일(목)『요한계시록 16:3-7』

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 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을지어다(딤전1:2)

 

일곱 천사가 가진 일곱 대접은 일곱 재앙이며, 마지막 재앙입니다. 즉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입니다. 첫째 천사가 땅에 대접을 쏟았을 때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 같은 것이 났습니다. 사단의 참소로 욥의 몸에 악창이 나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처럼 짐승에게 속한 백성들이 당하게 될 고통입니다.(욥2:7) 죽고 싶으나 죽을 수도 없는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가 땅에 대접을 쏟지만 짐승이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넷째 인을 뗄 때 청황색 말이 등장하고 그 말을 탄 자는 사망이며, 음부, 지옥이 그 뒤를 따르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원수 마귀는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 등 모든 것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둘째 대접을 바다에 쏟을 때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됩니다. 살아있는 피는 붉은 색이지만 죽은 자의 피는 오히려 검은 색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바다를 파랗다고 표현합니다. 제주도에 몇 번 갔다 왔지만 바다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육지에서 보는 바다와 또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아름답고 생명이 충만한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오염되고 검게 됩니다. 검은 바다는 생물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사람들의 생존에 있어서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천사가 강과 물 근원에 대접을 쏟을 때 물이 피가 됩니다. 사람의 생명이 피에 있지만 사람이 물 대신 피를 마시고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재앙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도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자 물이 다 피로 변한 적이 있습니다.(출7:20,21)

 

물을 차지한 천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선포합니다. 또한 이 사실을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가 피를 마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한 마디로 피값을 담당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원수 마귀는 이미 심판을 받았고 더 큰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처럼 죄를 짓게 하고 자기와 함께 사망을 당하게 하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물귀신 작전입니다. 원수 마귀는 자기 혼자 죽는 것이 억울해서 다른 수많은 영혼들을 데리고 함께 유황 불 못에 들어가자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원수 마귀는 무슨 짓이든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떠난 자유를 만끽하게 하고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진짜인줄 착각하고 마음껏 누려~ 누리고 있지만, 그들 앞에는 환난과 고통과 영원한 유황 불 못의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수는 절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심판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감추고 감춥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인양 세상이 권세와 영광, 그리고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지만 결국 원수 마귀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놀아납니다.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방황하는 별들처럼 잠깐 반짝이다 마지막에는 영혼의 빛을 잃고 영원한 어둠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유1:13) 따라서 우리가 빛을 사랑하고 빛으로 나아가야할 분명한 이유는 빛은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를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 세상에서 참 빛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했습니다.(시119:10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진리의 빛임을 우리가 알고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도 참된 빛입니다. 세상에서는 가장 고난스럽고 힘든 삶이지만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걸어간 자는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세상임금이 이끄는 길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하는 길이 다르니 그 끝도 다르며, 그 운명 또한 영벌과 영생으로 나누어집니다.

 

피를 흘린 자는 피를 마시게 됩니다. 의로운 피를 흘린 자는 의로운 자의 피값을 반드시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환난 가운데 원수의 편에 선 자들이 당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심판이요, 영원한 불 못에서 당하는 영원한 고통입니다. 물을 차지한 천사의 외침을 받아서 제단이 화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이 참되고 의로우십니다.” 성막에 있어서 번제단은 심판의 장소입니다. 사람들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흠 없는 짐승들이 죽임당하고 피가 뿌려지며 그 몸을 번제로 드리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시되, 그 죽음은 온 세상 죄를 담당하신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번제단은 하나님의 공의가 역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 또한 함께 공존합니다. 대속이라는 구원의 방편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없는 것처럼 여기시고 우리의 죄악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는 크고 놀랍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받는 형벌은 더욱 무겁습니다.(히10:29) 이것이 은혜의 시대에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린 반면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받는 심판이 더욱 큰 이유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좋은 땅이 있어야하고 깨끗한 물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로 생존에 필요한 땅이 황폐화되고 물이 오염되며, 다음에 나오지만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태우는 일도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생명을 주는 것이 오히려 사망을 가져다주는 재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끝까지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 들림 받고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복음을 전하고 또한 복음을 믿고 신앙을 지키는 것이 유익입니다. 마지막 전쟁에서 살아남아서 대환난에 들어가서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면 더 큰 저주,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이루며 살아가야합니다. 아버지의 뜻에서 벗어난 큰 능력이나 기적이나 열매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좇아 사는 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어제 지방선거가 끝나고 개표결과도 나왔습니다. 여야 중 누가 승자입니까? 확실한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8곳, 새정치 민주당은 9곳을 차지했습니다. 지난 선거와 비교자하자면 9:8이 8:9로 역전되었다고 하는 수준... 수치상으로는 새누리당이 한 석을 잃었지만 '세월호 참사'의 악재 속에서도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 두 곳을 이기고 최대 격전지였던 '텃밭' 부산을 사수함에 따라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새정치연합은 비록 인천을 내줬지만 대전·세종·충북·충남 등 충청권 4곳을 다 휩쓸면서 정치적 중원을 확실하게 차지하고 전체적으로도 한 석을 더 확보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기초단체장 여당이 124곳, 야당이 72곳을 차지함으로 오히려 새누리당이 설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여야 어느 일방의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절묘한 성적표'가 나온 셈입니다. 여야는 일장일단 잃은 것도 있지만 차지한 것도 있기 때문에 그리 손해 본 선거는 아닙니다. 그런데 확실한 승자와 패자가 나누어진 곳이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교육감선거입니다. 서울을 비롯해서 부인할 수 없는 진보교육감의 승리입니다.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는 서울 조희연, 경기 이재정 후보가 당선된 것을 비롯해 최대 13곳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승리했습니다. 이는 현재 6명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에 따른 '앵그리 맘' 표심이 교육감 선거에 일부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수는 4곳에 거쳤습니다. 대한민국교육현장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더욱 힘을 얻고 장차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이 어떤 영향 아래서 공부하게 될지... 서구사회가 인권을 내세워 결국 개인주의, 자유주의로 흐르고 돌이킬 수 없는 성적 타락과 윤리도덕의 폐해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인권으로 자율성과 자유를 보장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학생은 사람도 아닌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친 자유의 남용으로 아직 분별력이 없는 학생들에게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명목으로 동성애나 성적 타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나라도 건국이념이 있고 학교도 건학이념이 있는데, 특히 기독교의 신앙으로 세워진 학교에서 신앙을 가르칠 수 없고 예배를 못하게 하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비기독교인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너무나 편협된 생각이라고 비난하겠지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교육정책이 온전하다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나친 경쟁학습분위기는 당연히 바뀌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학생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한 사람의 사회인뿐만 아니라 앞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길러야하는 가정의 뿌리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를 저버리고 인권을 등에 업는 자율과 자유만을 강조하고 방종으로 내몬다면 교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가정 또한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모양의 세월호가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은 혼란의 세월호......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300여명의 꽃다운 대한민국의 아들딸을 잃었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이 자녀들을 죽음의 바다에 내몰았습니다. 또한 지금 대한민국 교유감선거의 결과로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많은 부모들이 진보교육감을 선택하고 뽑았으니 만족하겠지만 영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물 없는 광야에 놓인 것이 아닌지 참으로 염려스럽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온전한 야당의 승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육에 있어서 보수의 패배요, 진보의 승리입니다. 만일 누가 세월호 침몰에 관여했다면, 교육감선거의 결과로 톡톡히 자기 이익을 얻었다고 봅니다. 어제 개표결과를 보면서 느낀 생각입니다. 세월호를 통해서 누군가 대한민국의 부모들의 생각을 바꿨구나! 보수에서 진보로... 이러한 선택이 앞으로 어떤 열매로 나타날지... 누가 되든 우리의 소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은 세상의 길을 가고 우리는 진리를 따라 가야할 것입니다. 세상이나 사람이 우리의 자녀와 그 미래,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결과는 결과로써 인정하고 우리가 해야 할 바는 하나님 앞에 겸비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감사하고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