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9월 19일(토)『요한계시록 22:16』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인봉된 책을 누가 떼지요? 사도 요한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고 볼 자가 없자 울었습니다. 그러나 24장로 중의 하나가 울지 말라고 하면서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위의 뿌리가 이겼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6장부터 어린양이 일곱 인을 떼기 시작합니다. 일곱 인 안에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모든 일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일곱 인을 다 떼면 모든 일이 드러나고 감추었던 비밀이 열립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을 봅니다. 따라서 일곱째 인을 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이요, 이 땅은 회복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평화의 왕국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그 땅에 들어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향해 가는 것처럼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장막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언제라도 성막위의 구름이 떠오르면 이동할 수 있도록 나그네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땅은 안식의 땅입니다. 그 때까지는 세상이 볼 때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이요, 믿음의 시각으로는 훈련과 연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의 소망과 기업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치 차이가 있다면 가나안 땅은 눈에 보이는 실재이면서 또한 천국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보는 천국은 실재 그 자체입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고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에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약제사는 모형이요,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였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루신 이후의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이 실재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등을 보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의 광채를 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 가면 수건이 벗겨지고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요, 또 그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보다 먼저 나신 자요, 또한 그들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윗으로 모든 대적을 파하고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히 세우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은 여호와, 즉 오늘날로 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다윗이 눈에 보이는 적과 싸워 승리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적, 좀처럼 자신의 존재를 직접 드러내지 않았던 죄와 사망의 근원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던 원수 마귀와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고 지금도 그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만 싸우시는 것이 아니요, 교회도 함께 그 전장에 우뚝 서 있습니다.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교회의 승리요, 교회의 승리는 곧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원수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이며,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사망, 즉 죽음이 아니겠습니다. 마귀는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입니다.(히2:14) 그럼 사람들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입니다.(히2:15) 사람은 죽음으로 원수 마귀에게 지고 또 죽음으로 원수 마귀를 이깁니다. 죄인의 죽음은 패배요, 의인의 죽음은 승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원수 마귀에게 패배를 안겨주었습니까?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인으로 죄의 삯을 담당하고 죽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죽음의 불길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음에 참예한 자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그 속에 있는 자는 사망과 싸워 이깁니다. 죽음으로 사망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종이 아닙니다. 마귀도 어찌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죄인은 당연히 죽음 앞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된 자는 자신의 피를 내어줌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에게 승리를 안겨줍니다. 이와 같이 죽음은 원수 마귀의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교회의 무기도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질질 끌려 사망에 들어가고 다른 이는 원수 마귀의 권세를 파하는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후자가 더 비참하고 불쌍하게 보이지만 결국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볼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리스도처럼 담대하게 십자가의 자리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얼마나 이르렀습니까? 어쩌면 출발도 하지 않은 채 머뭇머뭇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이 힘이 듭니까? 그냥 포기했으면 하고 돌아가고 싶습니까? 힘을 냅시다. 다윗의 뿌리가 이겼습니다. 교회가 승리하고 성도들도 승리할 것입니다. 반드시, 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는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어두운 환난의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은 바로 새로운 세상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세상의 마지막 밤이 왔다면 광명한 새벽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르면 이제 새벽입니다. 두려움과 슬픔이 지나고 기쁨이 옵니다. 교회는 그 날을 소망합니다. 간절히 더욱 간절히.......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은 먼저 나타나는 새벽별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새벽이 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새벽이 되었다고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경배하고 섬길 것입니다. 실상은 밤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거짓돈 빛, 즉 겉만 보고 새벽이라고 착각합니다. 우리가 이것만 조심하면 원수 마귀에게 속지 않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분별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저도 얼마나 부족한지 세상을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주여! 진리로 판단하고 의의 길로 행할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오늘은 그리스도의 평안과 넘치는 은혜를 구하고 또한 전합니다. 할렐루야! 내일은 주일입니다. 꼭 교회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아멘.
'오늘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30일 - 계시의 말씀을 더하고 제하는 사람들이 받는 심판(계22:18,19) (0) | 2014.09.30 |
---|---|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21일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계22:17) (0) | 2014.09.21 |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19일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22:13-15) (1) | 2014.09.19 |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18일 -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계22:10-12) (0) | 2014.09.18 |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17일 - 예수 그리스도는 속히 그리고 반드시 오십니다(계22:6-9) (0) | 2014.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