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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21일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계22:17)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9. 21.

【오늘의 양식】

9월 21일(주일)『요한계시록 22:17』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새 날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 안에서 호흡하게 하시고 변함없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복되고 거룩한 주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된지요!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 또한 엄청난 특권임을 또 한 번 기억하고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기뻐하고 호흡하듯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무조건 감사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매우 단순하지만 그리스도 밖에서는 지킬 수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음같이 특히 생명의 열매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그 분으로 말미암아 맺을 수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 얻는 일을 앞에 두고 내 생각, 지식, 경험을 붙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우리가 미치지 못하고, 우리의 지식과 경험도 삶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외는 추측만 난무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면 내가 소원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주어진 것입니다. 생명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주인이 따로 있고 그 생명을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의미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물로 받은 첫 번째 생명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생명 얻은 기쁨과 더불어 죽음의 두려움 앞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생명의 탄생을 저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기뻐하는 일입니다. 축복입니다. 또한 더할 나위 없는 기회입니다. 무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만물은 끝이 있지만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로써 영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는 하나님과 같이 의롭고 거룩해야합니다. 이것이 인생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크게 성공하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은 결코 깨끗하거나 공의롭지 못합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무조건 영혼과 몸은 더러워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세상이 멸망으로 들어갈 때 세상에 속한 영혼도 함께 유황 불 못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합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간절히 원해야합니다.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고 살면 항상 그대로입니다. 육의 축복에 만족하고 살면 영은 깊은 수면에 빠져 깨어날 줄을 모릅니다. 세상의 말은 영혼을 깨우기는커녕 더 깊은 잠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무엇으로 영혼을 깨울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영혼이 잠시깨어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안타깝게도 인간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입니다. 극심한 가난이나 질병, 사고를 당했을 때, 즉 내가 의지할 만한 것이 나를 떠나거나 사라질 때, 한 순간 육은 힘을 잃고 자아가 깨어지면서 영이 깨어납니다. 그 때 복음을 들으면 지금까지 막았던 장벽이 무너지면서 영혼이 말씀으로 인해 깨어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보고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나 고난이 유익이 되는 것은 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생명 얻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변화 받고 구원받으면 축복이 되지만 그러지 못하면 가장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내가 복음을 들었고 또 그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행복자입니다. 주일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자는 분명히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 낫고 온전한 생명을 얻고자하는 가난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주일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그가 무슨 변명을 해도 불쌍한 영혼입니다. 안식할 곳을 얻지 못한 방황하는 영혼입니다. 오늘을 주의 날로 지키는 성도들은 주의 날에 주님께서 각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실 것이며 또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능히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합니다. 성령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영, 거룩하신 영입니다. 우리를 의와 거룩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세상의 영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과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교회와 한 영혼 한 영혼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좌지우지하는 분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우리 안에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셔서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붙들어주십니다. 그 분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또한 누가 말씀합니까? 신부입니다. 신부는 누구를, 무엇을 가리킵니까? 요한계시록 21장 9절 말씀을 통해서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성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즉 새 예루살렘성은 교회의 의로움과 거룩함, 아름다움에 걸맞게 단장됩니다. 교회의 실상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성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크고 웅장합니까? 아버지와 어린양의 처소가 있고, 구원받은 자녀들의 처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흐릅니다. 생명이 넘쳐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새 예루살렘성 신부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생명은 우리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특히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아버지께서 주셔야합니다. 악인이 영생을 얻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를 막을 자가 없습니다. 악인이 더 이상 악을 행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유황 불 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입니다. 반면 의롭고 거룩한 자들에게는 무한한 자유를 주십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 생각이 거룩하고 그 행위가 하나님께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하고 성령과 신부의 초청을 받아들여야합니다. 나는 무엇에 목마릅니까? 나는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까? 사람은 무엇을 원하든지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생명수를 간절히 원하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는 생명수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돈으로 사겠습니까? 힘과 권력으로 빼앗겠습니까?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잃는 자가 얻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더 포기하고 잃으면 하늘에서 보화가 그 사람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