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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2013년 12월 6일 묵상(요한복음 20:30-31)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3. 12. 6.


【오늘의 양식】

12월 6일(금)-『요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사람의 말은 하지 않은 말도 부풀려지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합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또는 새롭게 발전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도 큰 틀 안에서 통하지만 지방에 따라 가사나 가락이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우리 민족의 이동사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만 한민족의 뿌리는 역사적으로 그슬려 올라가면 결국 노아의 후손으로 직결됩니다.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셈으로 이어지고 그 자손 가운데 에벨이 있습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 때 세상이 나뉘었습니다. 두 아들의 이름은 벨렉과 욕단입니다. 벨렉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써 계보를 잇고, 욕단의 자손들은 메사와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에 거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창10:30) 메사는 모스코바, 스발은 시베리아의 옛 지명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이동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와서 남쪽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랑의 기원은 수십 가지가 되지만 기독교적으로 풀자면 이렇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엘’인데, 엘로힘, 엘샤다이, 엘엘론 등으로 불려집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여호와, 즉 야훼라는 거룩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근원,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나라 말로 생명의 근원은 바로 알입니다. 그래서 유독 시조신화, 건국신화를 보면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많습니다. 민족과 나라의 뿌리라는 의미겠지요^^ 기독교적으로 보면 알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아리랑을 다시 쓰면 ‘알이랑’이 되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이랑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천산산맥, 알타이 산맥이라는 큰 산을 넘어왔는데, 그 때 불렀던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라고 합니다. 큰 산맥을 넘어오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또한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는 노래이며,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된다는 신앙고백 또한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아리랑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맞다, 틀리다로 판단하거나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런 해석도 있구나 생각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날에는 자료를 저장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가 있습니다. 가장 쉽고 간단하게 쓰는 것이 컴퓨터와 USB와 외장하드과 같은 디지털 기기입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문자를 직접 써서 보존하고 후대에 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쓴 고대문서들이 발견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초로 기록된 것은 십계명 두 돌판입니다. 이는 친히 하나님께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기록까지 해주신 것입니다.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모세가 화가 나서 깨뜨리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만든 돌판에 다시 십계명을 기록해주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양피지와 같은 종이에 기록하여 남겼습니다. 성경만큼 오랫동안 그리고 바뀌지 않으면서 보존된 문서는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필사되고 번역되는 가운데 특별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영어번역본으로써 가장 권위 있는 번역은 킹제임스역인데, 우리나라에도 한글로 번역되어있지만 변개되지 않은 유일한 성경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많이 사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소장하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가지고 있고 기존 성경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으면 킹제임스 성경을 보기도 합니다.

 

성경기록의 목적은 오늘 말씀처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는데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습니다. 한 성경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떤 지식을 얻는 것 이상의 거룩한 목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소문을 들으면 넘어집니다. 쓸데없는 곳을 찾아가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잃습니다. ‘He is gullible’ 즉 귀가 얇다. 잘 속아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화와를 볼 때 사람에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아담은 하와의 말을 들었습니다.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특히 여자는 선천적으로 말을 잘합니다. 말로써 남자를 세우기도 하지만 남자를 넘어지게 하는 것도 여자의 말입니다. 두 마음을 품고 다른 말을 할 때 실족하는 일이 있습니다. 여자는 말을 조심해야합니다. 오히려 행동으로 섬김을 보이는 것을 하나님께서 크기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여자에게 순종의 계명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섬김을 받는 존귀한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합니다.(요21:25)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깨달아야합니다. 특히 복음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과 가르치신 교훈으로 가득합니다. 마음을 열고 성경을 읽으면 반드시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저도 교회를 어머님을 따라 그냥 다닐 때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알고 진실 되게 믿게 됐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외에 딴 사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단에 속한 사람들의 교주는 예수님보다 더 특별합니다. 카톨릭에서 마리아를 하늘왕후로 높이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도 성경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은 육신의 어머니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여인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믿음 좋고 주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한 성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를 믿고 따를 뿐입니다. 절대 사람을 높여서는 안 됩니다. 신성시하거나 절대자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사람을 높이면 높아진 사람도 망하고 높이는 그 사람도 함께 망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 다른 구원자도 없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마리아나 어떤 성인이나 교황에게 기도하는 것은 성경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의 이름에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대체할 다른 구원의 이름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수많은 말이 있고 글이 있지만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재는 척도와 자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잘못된 것입니다. 이단이 그래서 이단입니다. 한 마디로 망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생은 참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우리가 가진 성경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번역상의 오류가 있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오지에 사는 작은 부족은 마땅히 번역할 단어가 없는 경우도 많아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곳은 문자를 만들어서 성경을 번역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한글로 된 성경을 가졌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지도입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보물지도입니다. 구글어스라는 지도 프로그램이 있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지구가 작은 점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점점 확대해 가면 우리나라도 보이고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집들도 보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있는 상가와 그 위에 십자가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잘 보입니다. 성경도 멀리서 보면 뭐가 뭔지 모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성경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책꽂이 어느 틈엔가, 선반 위, 또는 잡동사니 상자 안에 놓여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시고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베뢰아 성도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러한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행17:11) 그러면 반드시 성경의 저자이신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