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1월 16일(목)-『계2:12-17』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버가모는 신들의 집합소와 같은 곳입니다. 제우스 신전,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비너스 신전, 뱀의 신을 섬기는 쓰스 신전, 술의 신을 섬기는 박카스 신전, 자손의 복을 준다는 베스타 신전 등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양강장제 박카스도 여기서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 신으로 술의 신, 황홀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좀 더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광기의 신입니다.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이 이름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독일 유학시절 함부르크 시청 지하홀 입구에서 본 술과 추수의 신 박카스 조각을 떠올렸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알고 나니 박카스가 별로 좋지 않지요!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앞으로 마실 생각도 싹 사라지네요!
버가모교회는 우상숭배로 가득한 도시 즉 사단의 위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버가모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순교하는 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버가모의 감독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때에 황제 숭배를 거부하다가 체포당했으며 불에 벌겋게 달군 놋쇠 황소 위에 얹혀져 처참하게 타 죽었다고 합니다. 터툴리안이 주후 3세기에 버가모에서 발견한 어느 조각에서 안디바의 이름을 찾아내 안디바가 실제로 버가모에서 순교했음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안디바란 이름은 '세상적인 모든 것을 반대하는'것을 뜻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된 증인으로 소개했습니다.(계1:5) 안디바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충성된 증인입니다. ‘증인’이라는 뜻을 가진 마르티스(μάρτυς)는 영어로는 martyr 즉 순교자로 번역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즉 증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자입니다. 안디바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다가 충성된 증인으로 순교했습니다. 버가모교회 성도들이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더욱 믿음을 견고히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충성된 증인이라고 일컬음 받는다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았다는 말을 듣고 사는 것만큼 더 큰 행복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엔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멉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한 순간 한 순간 주님을 의지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간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충성된 증인으로 우뚝 서 있지 않을까요?
버가모교회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허용됐습니다. 더 이상 지하묘지 카타콤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로마의 코스탄티누스와 서로마의 리키니우스가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고 교회가 자유한 것입니까? 오늘날 교회에 유익이 되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교회가 힘을 얻고 교회에 불이익이 되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힘을 잃는 것입니까? 교회의 힘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도 사람이 풀어주었다고 받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자유는 진리에서 나옵니다. 교회가 세상에 속하는 순간 묶이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자유합니다. 교회가 스스로 묶이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교회를 묶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로마제국이나 황제에게 속하지도 않아야했지만 버가모교회 시대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지금까지는 한 마음, 한 뜻, 한 성령으로 행했는데, 버가모교회시대부터 교회가 나눠지기 시작합니다. 안디바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성도가 있는 반면, 황제를 등에 업고 참된 남편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이라는 남자를 쫓아간 자들이 있었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로 하여금 올무에 빠지도록 적극적으로 도운 거짓선지자입니다. 우상숭배와 제물을 먹고 하고 음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칠 때 발람은 칼날에 맞아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버가모교회시대에 존재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이 성도들을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이끌었습니다. 황제의 대변자가 되어 교회를 타락의 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황제는 폰티펙스맥스무스라는 태양신의 대제사장직 칭호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의 대소사를 간섭하게 되었고 교계 지도자들에게 온갖 특혜를 다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신속하게 부패하게 되었으며, 교직자의 병역면제, 세금 면제, 사법상의 특혜, 재판도 교회가 법정이 되어 하게 됨으로 성직의 질서가 없었고 매매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랐습니다. 영지주의자로써 영혼과 영적인 지식을 중시한 나머지 육신의 삶을 방탕으로 이끌었습니다. 발람이나 니골라는 다 같이 백성을 정복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거짓된 말로 성도들을 파멸로 이끈다는 뜻입니다. 교훈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누구든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 즉 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마16:6) 로마 황제가 내린 칙령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누리는 순간 교회와 성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발람이 언제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했습니까? 40년 고난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때가 아닙니까? 발람의 계교로 인해서 바알브올에 가담된 자들이 얼마나 많았고 또 심판을 받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염병으로 2만 4000명이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지척에 두고서 말입니다. 불쌍하다 못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환난과 핍박 가운데는 천국이 가까웠는데, 육신적인 신앙의 자유가 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버리고 세상으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육신의 안락과 바꾸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버가모교회가 존재합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충성된 증인이 있는가하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님을 핑계 삼아 세상의 영화를 추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니골라는 배도자입니다. 땀 흘려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육신의 수고를 천한 것으로 여기고 영적인 것만 추구합니다. 당을 짓는 것부터가 큰 잘못입니다. 교단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교파와 교단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 될 수 없을 만큼 많은 신학과 이론이 팽배합니다. 저 또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기에 할 말이 없습니다. 당을 지어 자신의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 욕망이 자기 속에 전혀 없다고 자신할 목회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내 이름을 내고자 애쓰는 것도 헛된 노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나고 자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내 이름 석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달려있습니다. 내 영혼과 내 이름은 세상의 어느 누가 알아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야합니다. 우리 모두가 안디바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도 대적하는 자리에 함께 설 수 있다면, 사단의 위를 벗어나 충성된 증인으로 거룩한 땅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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