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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19일 말씀묵상-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요한계시록 2:12-17)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1. 19.

【오늘의 양식】

1월 19일(주일)-『계2:18-29』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샬롬^^ 반갑습니다. 오늘은 아시아의 일곱교회 가운데서 네 번째 교회로써 두아디라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두아디라는 버가모 동남쪽 64km에 위치하며 헤르무스 강과 카이쿠스 강의 계곡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버가모와 사데, 빌라델비아 그리고 라오디게아를 연결시켜주는 길목에 위치해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상인들이 모이는 상업도시이며 또한 주석의 소산지와 더불어 청동제련업으로 유명했으며, 공업도시로서 염색업과 모직업이 성행하여 동업조합, 염료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2-14절의 기록을 보면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주께서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서 바울의 말을 청종하고 자기 집에 영접하여 온 집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여자로써 빌립보교회의 초석이 된 인물입니다. 두아디라에는 고대 리디아의 태양신 티림노스 신전이 있었고 태양신 ‘아폴로’와 ‘아데미’, ‘삼바다(무당)’ 등의 신전이 있었으며 점성술이 성행했습니다. 두아디라의 뜻은 수고의 향기, 노동의 달콤함 맛, 관 쓴 여자, 끊임없는(통탄스러운) 희생제사, 미사, 여성지배자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게 알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은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두아디라교회시대는 교황권이 확립된 A.D 538~1517년까지를 가리키며 중세시대 또는 교황권이 주도한 종교암흑시대라고 일컫습니다. 거짓이 진리인양 둔갑하고 교황권과 왕권 사이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흑암 속에서 살았던 시대입니다. 로마제국이 허용한 종교의 자유로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교회를 타락시키고 세속화시키는 일에서 한층 더 나아가 자칭 선지자 여자 이세벨을 통해서 이방종교와 혼합된 종교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말합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이세벨도 시돈 왕 엣 바알의 딸로써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결혼한 여자입니다.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퍼뜨린 악독한 누룩과 같은 이방여자입니다. 이세벨의 상에서 먹었던 바알 선지자가 450명, 아세라 선지자가 400명이나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을 악한 여자 이세벨이 제공하고 이방여인에게 힘없이 조종당한 멍청한 아합 왕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타락한 종교를 음녀로 표현하고 있는데, 두아디라의 여러 가지 의미 가운데 하나인 관 쓴 여자가 이에 해당합니다.

 

교회가 힘을 얻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면 교인들은 기뻐하겠지요. 믿음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교회로 몰려들겠지요. 언젠가 서울의 모 교회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세간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처럼, 또한 그 교회 출신들이 새삼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언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정복하라 하셨습니까? 세상 위에 군림하라 하셨습니까? 예수님 자신도 나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제자들도 예수께서 세상에서 불러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 깊은 곳을 감찰하십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짓선지자들도 다 살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흑암도 감출 수 없습니다. 자칭 이세벨과 그 여자와 간음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닙니다. 어찌 우상을 숭배하는 음란한 여자를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힘 있는 자를 따라갑니다. 사람의 욕심이 분별력을 잃게 하고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 하면서 옳은 줄로 착각합니다. 불꽃같은 주님의 눈앞에 설 때 진실은 밝혀집니다. 주님은 두아디라교회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십니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칭찬합니다. 두아디라는 상공업 도시입니다. 할 일이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수고의 향기와 노동의 달콤한 맛이 있습니다. 두아디라 지역적인 특징을 통해서 두아디라교회의 위와 같은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교회시대는 1000년 가까이 되므로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오랫동안 인내했습니다. 로마카톨릭의 극심한 핍박을 견뎌냈습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수많은 교리들이 만들어지고 세상의 모든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 외에 수많은 우상들을 성상이라는 또 다른 우상을 섬겼던 시대에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린 참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카톨릭은 자신들을 그 이름처럼 보편적(catholic), 또는 우주적 교회라고 말하고 교황권이 베드로 사도의 뒤를 잇고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면서 교황무오설까지 주장하지만 중세교회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그 주장이 얼마나 거짓되고 허황된 주장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개신교는 깨끗한가?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 목사들의 추태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저라고 깨끗할까요?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거나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는 타락했습니다. 세상은 둘째치고라도 교회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종교적 이론과 주장 때문에 동서 교회가 서로 싸우는 동안 참된 교회는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수고했습니다.

 

카톨릭 교리라고 100% 틀렸다고 보기 어렵고 개신교의 교리가 100% 맞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안식일교나 하나님의 교회 등은 주일 대신 안식일을 지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 321년에 태양의 날, 즉 일요일 휴업령을 선포했고, 가톨릭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364년경)에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주일을 지킨다고 말한다면 분명히 잘못이지만,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성도들이 모여 떡을 떼고 말씀을 강론한 것을 볼 때 주일을 지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비성경적인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식 후 첫날인 주일은 그리스도와 새롭게 시작하는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안식일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천년왕국이 땅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제 칠일 안식일이라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안식 후 첫날과 같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제 8일은 영원한 한 날의 시작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는 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로마 황제의 명령이나 카톨릭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신앙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부활하신 날만큼 소중하고 사모할 날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도 주의 날이니 주님의 날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은 당연히 아버지께도 기쁨이 됩니다. 여전히 안식일을 고집하는 것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처럼 구약의 율법에 매여 사는 것과 일반입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얼마나 많이 강조하셨습니까? 따라서 주일을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가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오직 말씀으로 분별하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이단이 주장하는 교리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고 도매금으로 정죄한다면 정작 우리가 지켜야할 진리까지 부정하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좀 더 냉철하게 분별하고 진리가 짓밟히거나 진리의 보배를 잃는 일이 없어야하겠습니다. 진리가 모독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주여! 우리에게도 주님의 불꽃같은 눈을 주셔서 세상을 영적으로 분별하고 거짓된 것에 속지 않게 하시고 빼앗긴 진리의 보화를 찾게 하소서! 원수 마귀가 도둑질해 간 교회가 지켜야했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이 마지막 때에 다시금 회복시키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가운데 더 풍성한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주소서! 또한 우리 안에서 전통이나 정통이라는 이름의 빛으로 둔갑한 어둠들을 밝히셔서 단호히 잘라내는 결단과 용기를 주소서! 진리로 돌이키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