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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2월 17일-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요한계시록 3:14-22)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2. 17.


【오늘의 양식】

2월 17일(월)-『계3:14-22』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샬롬^^ 평안하셨습니까? 주일 은혜 가운데 보내셨지요! 어제 주일에는 저희 교회에서 파송예배를 드리고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께서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재정적인 여력이 아직 미치지 못해서 저희가 전적으로 후원하지는 못하지만 힘 닺는 대로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는 선교사님을 섬기는 일이 짐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교훈처럼 교회와 가정이 선교를 하거나 선교사님을 후원하는 것은 좋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에게 뿌릴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뿌릴 씨를 주시고 자라게 하셔서 여러분이 의의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모든 것에 풍족하여 후한 헌금을 하게 될 것이며 우리를 통해 그 헌금이 전해질 때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고후9:10,11-현대인의 성경)

힘써 주를 섬기십시오. 건강하면 몸으로 주를 섬기시고, 재능이 있으면 그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재정이 풍성하면 물질로 섬기시고, 우리의 입술로 주를 찬송하고 시간을 내어 기도로써 하나님의 나라의 귀한 사역에 동참하십시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을 악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기보다 오히려 보잘 것 없다 여기고 땅에 묻어둠으로 책망을 받은 것처럼 하지 말고, 우리는 갑절로 남겨서 칭찬을 들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동참하는 충성된 일군 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제자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고 대접하는 자는 상을 잃지 않는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0:40-42)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개척교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목회자의 가정이 있다면 쌀 한 포라도 갖다드리고 주의 이름으로 섬긴다면 감사해서라도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힘쓰고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덤으로 받는 축복이 더욱 많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 동일하게 전파하신 복음은 천국복음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사도 베드로가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순절 날 외쳤던 말씀도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 (μετανόια)라고 하는데, 단순히 옛 잘못을 뉘우치고 몇 가지 잘못된 태도나 습관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뜻하는 말입니다. 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사망의 길을 벗어나 생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라오디게아교회, 즉 마지막 교회시대의 성도들에게 열심을 내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더욱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문 밖에서 두드리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문도 복음으로 두드리고 계시지만, 이 시대의 문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때 영접하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풍성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기쁨을 나눕니다. 친밀한 교제가 있습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가 무엇입니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는 신랑과 신부,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부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런 혼인잔치에 주인공으로 참예하게 됩니다. 잔치에 초대받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신부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7년 동안의 공중혼인잔치에 참예하는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준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언젠가는 오실 신랑을 기다리며 등불을 밝히고 몸과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정결케 하는 기름을 준비한 성도들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 문을 열어준 사람이 구원을 얻고 마지막 때에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는 것은 관심이 딴 곳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일에 너무 바빠서 진리와 생명의 소리를 들을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또한 자기가 듣기 원하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입니다. 나의 관심이 참으로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관심에 따라서 우리의 눈이 무엇에 고정되고 귀가 솔깃하지 않습니까? 그 관심은 내가 품은 마음과 더 깊은 영혼의 성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올 수 있도록 그 통로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아주 작은 문이라 할지라도 열려있으면 들어오십니다. 아주 큰 문이라 할지라도 닫혀 있으면 문 밖에 그냥 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 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면 절대로 그 문을 열지 않습니다. 의와 거룩, 생명, 천국, 영생....... 이런 말에는 반응하지 못하게 이미 프로그램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돈과 명예, 성공, 자랑, 인기....... 이런 말에는 0.0000001초 만에 응답하고 그 육중한 문이 언제 닫혀 있었나 고민할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당신은 부자입니까? 당신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국가기 힘듭니다.(마19:23) 가난합니까? 복음이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당신은 천국 문 가까이 있습니다.(눅4:18) 하지만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합니다.

언젠가는 누가 문을 열어주는 것과 상관없이 예수께서 친히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준 자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지만 마지막까지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자는 심판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언젠가는 사람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주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영광과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고 세상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엄위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한없는 자비로 모든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시지만 마지막 심판의 날,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 가운데 쏟아지는 날에는 그 앞에서 피할 자가 없고 숨을 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시대를 향해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촉구하십니다. 그런데 항상 그랬듯이 멸망을 앞둔 시대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이 그랬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그랬으며,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면서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옛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았고, 소돔과 고모라도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망했으며, 예루살렘도 AD. 70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 마지막 때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도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는 반기지만, 회개의 외침은 외면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주님 앞에 귀하고 귀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루어야할 신앙의 과업이 다름 아닌 회개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임하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해야합니다. 저를 보더라도 오늘날 회개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메말라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습니다.(마11:17) 영적인 반응이 식어졌습니다.

어제 주일예배시간에 잠간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몸과 혼은 늘 새로운 것에 반응합니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 즐거움을 쫓아갑니다. TV 방송 프로그램을 재탕 삼탕 보여주면 사람들이 시청하겠습니까? 방송제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신선하고 새로운 프로를 선보일까 늘 고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채널고정은 물 건너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송은 더 선정적이고 사람들이 말하는 막장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진리에 반응합니다. 생명을 갈구합니다. 그래서 말씀과 찬송과 기도를 즐거워합니다. 십자가, 은혜, 구원, 영생....... 이러한 단어가 나오면 기쁨으로 반응합니다. 날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육신을 가지고 사는 인생이라 육신의 생각이 위로 올라와 영의 생각과 소원을 눌러 버립니다. 그래도 마중물을 부어 깊은 곳에 있는 생수를 긷는 것처럼, 말씀과 찬송과 기도에 힘쓰고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해야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서 내 영혼을 깨우고 일으킬 수 있습니까? TV 앞에서 우리의 영혼이 감동합니까?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을 위해서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모이기를 쉬지 않아야합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회개라고 순종해야합니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원수 마귀가 자기 자식은 내버려둡니다. 어차피 내버려둬도 죄와 사망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택한 자들은 다릅니다.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키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마귀를 대적하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항상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 채, 주님과 멍에를 같이하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반드시 복음을 듣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합니다. 거듭한 성도들은 의와 거룩의 십자가의 길로 쉬지 말고 걸어가야 합니다. 한 가지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길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한 주간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