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양식】
2월 23일(주일)-『계4:1-3』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에게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계1:19) 요한이 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이제 있는 일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통해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교회시대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사를 일곱 시대로 나눌 수 있고, 에베소교회로부터 시작되는 교회시대는 라오디게아교회시대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교회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특히 라오디게아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오늘날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마음에 새겨야할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초대교회에 일곱 교회가 있었던 것처럼 각 교회시대마다 일곱 교회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일곱 교회의 모습을 띤 교회들이 각 시대마다 있었고, 또한 각 시대마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교회의 현상이나 모습이 그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일곱 교회의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고 있으며 주님으로부터 합당한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책망 없이 칭찬만 듣는 교회가 있는 반면에 사데교회나 라오디게아교회 같이 칭찬은커녕 오직 책망을 받는 교회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이 “나는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니 오히려 주님의 책망을 듣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영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주님께 인정을 받고 칭찬과 함께 면류관을 받을지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오늘날만큼 교회가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세상의 지식과 가르침들이 교회 안에 들여온 적이 있었을까요? 사실 우리에게 워낙 익숙한 일이라 구분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모르고 혼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일에 특히 탁월합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말씀을 끌어와서 우리의 삶에 맞추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말씀이 안 맞으면 두드리고 바꾸어서라도 우리의 현실에 맞추려고 합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벗어난 교리와 가르침과 적용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을 이끌고 있습니다. 말씀 그대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은 왠지 고리타분하고 율법적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음행한 연고도 없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나 이혼한 여자와 재혼하는 다른 남자가 동일하게 간음죄를 짓게 된다는 말씀을 전하면 과연 성도님들 가운데서 얼마나 동의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따를까요?(마5:32,마19:9) 옛날에는 남자가 힘이 있어 여자를 쫓아내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역전이 되어서 이혼당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나 올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가정을 파괴하거나 동성애부부와 같은 기형적 가정을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면서 박수를 쳐주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자기 의를 드러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 원수 마귀가 하고 있는 가장 큰 일이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자녀들은 부모를 거역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수의 궤계를 깨닫고 성경에서 벗어난 세상의 법을 따르기보다는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하면, 그 사랑과 복종이 조화를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엡5:22-25)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엡6:1-4)
우리가 세상이 옳다고 하는 길로 따라가면 여지없이 불순종의 길로 들어서고 맙니다. 일곱교회를 통해서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 위에 교회가 군림했을 때 교회는 타락의 길로 떨어졌고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전혀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거나 육신의 자랑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 사셨지만 자신의 거룩함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서 의로운 몸을 찢으셨고 거룩한 피를 땅에 쏟으심으로 아버지께 산제사를 드렸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비난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돼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과 벗하고 세상이라는 남자를 따랐던 영혼들은 이 땅에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때가 멀자 않았다고 모두가 말하는 이때에 내 영혼의 의과 거룩을 위해 땀 흘리고, 내 영혼뿐만 아니라 내 형제자매의 영혼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할렐루야!
요한계시록 4장부터는 장차 될 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말씀으로써 모든 교회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먼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들었던 나팔소리와 같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일곱교회의 환상을 보여주시고 이제 하늘을 열어서 하늘보좌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서 들림을 받습니다. 영적으로 올라갔는지, 육신도 함께 이끌러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자기는 몰랐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요한도 매우 깊은 영적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고후12:2) 조용기 목사님을 위시해서 순복음에서는 오늘 이 말씀을 교회의 휴거로 해석합니다. 저도 순복음교회 목사이지만 이 말씀은 교회의 휴거라기보다는 단순히 사도 요한이 이리로 올라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늘로 이끌림을 받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 즉시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하늘 보좌를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기록 형태상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의로운 백성입니다. 다음이 땅의 일입니다. 그래서 땅의 환난이나 심판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보좌를 먼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은 성부 하나님, 즉 아버지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떠한 모양이나 형체를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영이시며, 또한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요한도 하나님이 어떤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벽옥과 홍옥으로 표현한 빛으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벽옥은 푸픈 옥이라는 뜻인데, 영어로 jasper 로 번역이 됐는데, 이 벽옥은 푸르다기보다는 붉은 색을 띤 광물입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벽옥을 다이아몬드라고 번역했고 홍옥은 루비로 번역했습니다. 계21:11절에 새예루살렘 성의 빛이 벽옥과 수정같이 맑다고 표현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광채가 다이아몬드처럼 흰색으로, 또한 루비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흰색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 그리고 순결하심과 말할 수 없는 거룩한 영광을 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홍보석의 붉은 색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단순히 우리는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요일1:5) 그리고 무지개가 보좌를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즉 에메랄드의 초록빛으로 가득했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고 녹색은 하나님의 은혜, 자비, 사랑, 생명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생명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 또한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거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야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셨고, 하늘 보좌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 하였고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하늘은 열려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다면 우리도 하늘 위에 하늘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셋째하늘에 올라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비록 우리는 지금 사도 요한을 통해 말씀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있지만 말씀을 믿는 자에게 언젠가는 실상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언약의 성취를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복되고 거룩한 주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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