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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8월 9일 - 둘째사망을 당하는 자-믿지 아니하는 자들(계21:8)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8. 9.

【오늘의 양식】

8월 9일(토)『요한계시록 21:8』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샬롬^^ 반갑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 다음으로 생명을 얻지 못하고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들어가 둘째사망의 해를 받는 자들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포함합니다. 또한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에서는 새 하늘의 새 땅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의롭고 거룩한 자들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내가 복음을 듣지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증거되고 있습니다. 내가 귀를 기울이고 붙잡으면 됩니다. 라디오만 있고, TV만 틀고, 인터넷으로 클릭만 한 번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관심에 달려있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히4:1-3) 히브리서의 말씀은 특히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신 일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원수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며, 일평생 죄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예표로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며, 또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기업, 안식할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보이시고, 요단강을 건너 걸어 들어가서 손으로 취한 바 이 땅의 기업을 허락하셨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약속된 기업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었지만 진정한 안식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로 안식을 약속받은 자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삽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1절 말씀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지만 하나님께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광야에서 어느 누구도 맛보지 못한 하늘양식을 먹고 신령한 반석에서 나는 신령한 음료를 마셨지만 우상숭배를 하고 간음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육신에 속한 삶, 또한 혼에 속한 삶은 참된 영적인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천년왕국의 백성들도 모든 하나님의 비밀이 밝혀지고 직접 그리스도와 거룩한 자녀들을 통해서 온전한 말씀을 듣고 배우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천년왕국의 백성들 가운데 원수의 편에 서서 유황 불 못에 들어가는 자가 더 많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오늘날 현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거룩과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사람은 정결케 되지 않습니다. 정금과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은 한 결 같이 고난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갈대아 우르나 하란에서 그저 평안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남들이 바라고 꿈꾸는 대로 안락하게 살았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간증을 하면 석 달 열흘을 해도 부족할 만큼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그들을 외면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인과 같이 마음에 새기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됩시다. 이스라엘의 요구를 따라 왕이 되었지만 종국에 버림받은 사울 왕처럼 되지 말고 때로는 허물이 있어도 끝까지 택하심의 은혜를 떠나지 않은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사단의 훼방을 하나님께서 막아서는 사람, 원수 마귀가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했지만 주님께서 간절히 중보하신 것처럼 주님의 손에 끝까지 붙들린바 된 사람이 됩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는 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보좌이지만 한편으로 은혜의 보좌입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곳이며, 은혜를 입은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은 지위나 힘과 권세가 아닙니다. 오직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변치 않는 법칙은 ‘거룩한 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입니다. 세상은 권세 있는 자가 힘을 행사하면 무엇이든 얻고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최소한 아닙니다. 권모술수를 쓰고 남을 밟고 누르면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긴 자가 가장 존귀한 지위를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높으신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분의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분에게 달려 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롬14:23)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보혈의 능력을 믿읍시다. 주의 보혈은 우리를 능히 하나님의 보좌로 이끄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아야합니다. 우리는 피 뿌림을 받기 위해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벧전1:2) 우리는 보혈을 지나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한 몸을 드리심으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찢으신 휘장을 지나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길은 열렸지만 들어갈 수도 있고, 외면하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원수의 길을 따릅니다. 사람을 따릅니다. 이단교주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교황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특히 8월 15일에는 제가 살고 있는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승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집행한답니다. 카톨릭은 성경의 기록이나 근거도 없는 내용을 진리인양 섬기고 있습니다. 성경에 그가 누구이든 여자를 섬기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여자는 항상 섬기는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여자가 원수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교훈입니다. 돕는 배필로써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남자보다 뛰어난 여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과 사명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잘 섬긴 여자는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쩌면 남자들보다 더 존귀한 자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특히 남편과 아내가 사랑과 순종으로 함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결국 자기도 망하고 다른 영혼들까지 실족케 합니다. 절대로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음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로마카톨릭이 음녀교회요, 교황이 음녀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입장에서는 교황의 방문이 위기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카톨릭의 ‘신앙과 직제 일치를 위한 협의회’ 창립을 “카톨릭과 바람난 한국교회”라고 표현한 책자도 보았습니다. 일반 사람들이야, 아주 편협한 생각이라고 비판하겠지만 성경의 진리를 떠나고 사람이 하나님처럼 높아진 카톨릭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8월 1일 자 워싱턴포스트지에 게재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십계명’에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와 ‘타인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고 그들의 믿음을 존중하라. 교회는 개종이 아닌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누가 보든지 옳은 말이요! 수긍이 가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성경으로 봤을 때는 아닙니다. 일요일은 믿는 성도들에게 주일입니다. 주의 날입니다. 당연히 육신의 일을 추구하기보다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예배로 섬기는 날입니다. 교회가 불신자나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을 전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세상의 관점이야 대환영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까 두렵지 않습니까?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의 말을 믿고 따르면 함께 망합니다. 단 두 명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믿음으로 말하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여기서 떠나면 믿음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리킵니까? 천국의 믿음이 아닙니까? 본향을 바라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입니다. 믿음에 있어 우리가 주님의 인정을 받고 칭찬받기를 원하면서 오늘도 주님과 더불어 함께 하고 주님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승리의 삶을 삽시다. 내일은 복되고 거룩한 주일,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고 감사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