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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5일 -새 예루살렘성의 진주문(계21:21)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9. 5.

【오늘의 양식】

9월 5일(금)『요한계시록 21:21』

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새 예루살렘성은 사방에 열두 문이 있는데, 그 문은 진주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의 규모를 본다면 문의 크기도 상당할텐데, 문이 하나의 큰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왜 진주일까요?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면 우리가 그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조개 속의 모래알이 진주가 된다고 합니다. 조개 속의 모래가 어떻게 진주로 변할까요? 진주는 대부분의 광물성 보석과는 달리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보석입니다. 조개의 껍질 바로 밑에는 외투막이라는 막이 있어서 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외투막은 조개가 섭취한 음식물 속의 미네랄을 이용해 조개의 껍질을 만드는 물질을 배출합니다. 자연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조개껍질과 외투막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조개는 몸속으로 들어온 이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껍질이 되는 바로 그 물질을 배출해 이물질을 감싸버립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 겹 한 겹 쌓이고, 두껍고 단단해 지면서 마침내 진주가 됩니다. 진주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외투막으로부터 온 콘키오린이라는 단백질과 탄산칼슘의 층이 수백겹 이상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진주는 여러 가지 모양을 띠는데, 원형에 가까울수록 고급으로 인정됩니다. 색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한 종류의 진주들이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유명한 흑진주는 남태평양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요즘 보석가게에는 양식진주가 많은데 이 또한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생성됩니다. 다만 사람이 조개에 이물질을 인공적으로 넣어 줌으로써 진주가 생성되는 과정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식진주라고 해서 가짜라는 뜻이 아니며 천연진주와 마찬가지의 진주입니다. 양식진주는 구형의 물체에 인공적으로 피막을 입힌 모조진주와는 다른 것입니다. 크기가 클수록 값비싼 진주가 되기 때문에 양식업자들은 큰 진주를 얻기 위해 양식기간을 길게 연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모양이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그러질 확률 또한 높아집니다.(국립중앙과학관)

 

조개가 자기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그것을 감싸고 자신의 진액을 낼 때 진주라는 아름다운 보석이 만들어집니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지라도 오랜 인내가 빛나는 진주를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보석으로 안겨주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의 문이 진주, 그것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큰 하나의 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은 반드시 진주문을 통과해야합니다. 이 사실은 어떤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권세를 얻느냐하는 질문과 함께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사람이 거룩한 성에 들어가며 하나님 아버지의 처소가 있는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막을 짓고 성막을 중심으로 생활했지만 아무나 성막의 성소와 지극히 거룩한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레위자손들 가운데 택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으로써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일 년에 단 하루, 7월 10일 대속죄일에만 허락되었습니다. 하늘의 지성소와 이 땅의 지성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땅의 지성소는 오직 죄사함을 목적으로 들어갑니다. 한편 하늘의 지성소는 죄사함을 받고 의와 거룩을 이루고 영광을 받은 자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경외감과 함께 기쁨으로 들어갑니다. 아버지께서 베푸신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들어가는 곳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라는 시편이 온전히 성취되는 것입니다.(시100:4) 이 땅에서 모형으로 보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실재가 됩니다. 진짜를 보고 진짜를 누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삶을 삽니다. 따라서 성도가 땅의 축복으로 만족하고 산다면 가장 불쌍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7:29-31)

 

하늘의 진주문은 고난의 열매입니다. 아버지께서 태초에 아들을 낳으신 아들의 모습과 영광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라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영광은 다릅니다. 고난의 흔적에 따른 더 큰 영광이 그 몸에 있습니다. 더 큰 권세를 아버지께 받으셨습니다. 팔복의 가장 마지막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신 고난과 영광의 교훈이 바로 진주문의 참된 의미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정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은 십자가가 주어진다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신 있게 성경은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아버지의 택함을 입은 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갈 것이며, 그 십자가의 길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아버지와 아들의 종들인 거룩한 천사들이 함께 하고 도와줍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연약함과 실수가 있고,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하나님께서 붙들고 가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그 끝이 어디입니까? 세상이 가장 싫어하고 조롱하는 십자가입니다. 성도의 삶이란 죽음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영광스런 죽음이란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평안의 때를 살고 있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은 우리가 영광의 기회를 잃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환난이 기다리고 있고 그 폭풍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보다 부활의 영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라는 말씀이 한 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인해서... 복서가 한 대 두 대 가볍게 맞다보니, 저항력이 생겨서 “그래 때려봐라 아무 것도 아니네^^ ” ㅎㅎ 그러다가 한 방 크게 맞으면 KO패 당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신호를 알리는 사람들의 외침이 거짓말을 한 양치기처럼 인식된다면 그 때가 가장 위험함 때입니다. 누가 위험하다는 것인가요? 파수꾼의 외침을 외면하고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의 영혼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블로그 글에 보니까,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등 원수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이 역정보를 흘리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의 전략이나 앞으로 일어날 이들을 분별하기 어렵다는 글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연구하고 정체를 파악하기 보다는 말씀을 돌아가서 말씀으로 대조해보고 살펴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해서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고 해서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견고한 망대요, 반석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만큼은 내뱉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고난의 짐을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고통이 다가와도 그 고통을 감당했을 때 진주는 만들어집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삶도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벗어던지고 싶은 십자가를 그래도 내 몸처럼 여기고 살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빛나는 진주가 되고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샬롬^^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