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양식

오늘의 양식 2014년 6월 21일-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계17:7,8)

by 주의 길을 예비하라 2014. 6. 21.


【오늘의 양식】

6월 21일(토)『요한계시록 17:7,8』

7.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5)

 

사도 요한은 붉은 빛 짐승을 탄 여자를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다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오히려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었습니다. 짐승을 타고 있으니 세상나라와 그 권세 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것은 중세시대에 참되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였던 카톨릭의 모습이며,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세시대 500년간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카톨릭이 죽인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무려 6천만~7천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천사가 여자와 여자가 타고 있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가르쳐줍니다.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장차 무저갱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입니다. 여기서 짐승은 원수 마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했고,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을 방해했으며, 가롯 유다에게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계시록의 말씀을 기록할 당시에는 원수 마귀는 세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습니까? 원수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무저갱에 갇혔습니다. 원수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 죽음은 사단의 승리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인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는 의인을 죽였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를 희생제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완전한 승리입니다. 참으로 갈보리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이지만 그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미련한 것으로 죄인을 구원하십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 이룰 수 없는 구원을 십자가로 성취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갈보리로 올라가 십자가 앞에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벗겨집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입고 삽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도 원수 마귀는 무저갱에 갇혀 있습니다. 대신 자신의 사자들과 흑암의 세력들을 땅 위에 올려 보내 세상의 모든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원수 마귀가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올라옵니다. 공연을 할 때 무대가 완벽하게 준비되고,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오르면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와 같이 원수 마귀도 처음에는 적그리스도를 올려 보내 자신의 길을 예비하고 마지막 전쟁 후에는 가짜 그리스도로 온 세상에 자신을 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죽은 요한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흉내내기 위해 마지막 전쟁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 온 세상이 그를 따르고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 당시에는 없지만 장차 무저갱에서 올라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멸망으로 들어갈 자입니다. 사람들은 원수 마귀의 마지막 운명을 깨닫지 못하니 그를 따르고 섬기다가 함께 무저갱으로 들어갑니다.

 

세상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멸망을 받기로 작정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순전히 운명은 자기 손에 달려있습니다. 한 사람이 품은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가진 영혼의 성품을 보십니다. 그 영혼이 품은 겸손을 보시고 때로는 교만을 보십니다. 가난한 심령을 살피시고 완악한 영혼 또한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직 육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자기 사람들을 택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셨습니다.(렘1:5) 바울 사도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받고 은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갈1:15)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자들은 끝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그 택함을 후회하지도 않으시며, 택함을 받은 자를 끝까지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한낮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사람이었지만, 때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며,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원수 마귀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결국 원수를 따르고 유황 불 못을 영원한 상급으로 받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불의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형벌의 장소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겠지만 사실 그 마음 때문에 그 영혼이 그곳에 던져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택함을 받았다는 자부심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 영혼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마음이 굳어진 걍퍅함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일입니다. 바로 왕처럼 자기도 망하고 자기 백성들도 망하게 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될수록 사람이 포학해집니다. 하나님의 선한 성품은 없어지고 원수의 욕심과 교만과 세상의 쾌락을 쫓아 달려갑니다. 생명이든 사망이든 자기가 품은 마음과 한 영혼이 걸어간 삶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넓고 편한 세상길이 아니라, 힘들고 고난이 따르지만 좁은 길, 생명길로 갑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서 가셨고,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간 의의 길입니다. 거룩을 온전히 이루는 길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보장해주실까요?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에 매여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의 유무에 따라 영원한 운명은 결정됩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자기 이름이 흐려지거나 지워지지 않도록 늘 순종함으로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구원의 견고한 반석위에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교회와 예배를 멀리하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꼭 두려움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실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는데, 우리의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요, 진리의 말씀으로 지은 견고한 성입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주의 날이 가까웠을 때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일은 주일입니다. 가까운 교회, 경건한 교회,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교회에 나가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읍시다. 샬롬^^